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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4:1-12,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관리자 0 1,478 2021.05.23 22:25
롬 14:1-12,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14:1-15:13)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1-6)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문제 – 차이를 인정하라. 바울은 강한 자들에게 약한 자를 받아들이라고 말씀한다. 주장들을 구별하지 말라. 자신의 주장과 상대의 주장을 비교하며 어느 것이 옳은지 논쟁하거나 어느 것이 그른지 판별하지 말라. 서로의 주장을 비교하고 논쟁하고 판별하려고 하면, 원래의 의도와 달리 그 결과는 십중팔구 심각한 갈등과 분열과 반목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 따지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씀한다.

 1-3, 서로 용납하라(1-3),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방신에게 바쳐진 고기와 포도주도 먹고 마신다. 하지만, 약한 사람은 이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다. 왜 강한 자의 행동을 정죄하고 비판하면 안 되는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왜 약한 자의 행동을 무시하면 안 되는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둘 다 ‘주님을 위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거나 먹지 않는 것, 어떤 날을 중시하거나 중시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비본질은 서로 용납해야 한다. 신앙생활 양식의 다양성을 인정하라. 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다고 안식일을 어긴다고 예수님을 정죄했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정죄하는 죄를 범했다.
주초문제, 주초를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로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본질적인 계명을 놓치지 않도록 하라.

본질적인 것은 양보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이시라는 진리, 유일한 길, 진리, 생명이라는 진리는 본질적인 것으로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어디까지가 본질적인 것이고 어디부터 비본질적일까? 본질적인 것에서는 소나무처럼 강직하고, 비본질적인 것에서는 버드나무처럼 유연해야 할 것이다. (그림 참조)

 4-6, 심판하지 말라(4-6). 비판하면 내가 주님의 위치에 서는 것이다.
절기를 지키는 문제도 동일하다. 교회는 더 이상 유대인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용납하고 공동체성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한다. 다른 이를 판단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5-9, 7-9)

 1) 주를 위한 인생(7-9) : 중요한 것은 주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①창조 원리 ②구속(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셨다) ③ 주님을 위한 삶은 주님의 몸된 교회(이웃)를 위한 삶이다

 2) 성도의 인생 목적(5-9) : 주를 위한 삶,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라.
*7-8.
 주께서 그를 위하여 죽었다가 살아나셨다. 만약 내가 어떤 성도를 비난하면 그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비난하는 셈이 된다(9).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임을 고백하면서도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자리를 넘보는 죄를 범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10). 나와 신앙의 스타일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느냐는 사소한 것이다. 각자 주장이 다르더라도 그것은 덮어두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3. 하나님의 심판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너는 왜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너는 왜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강한 자와 약한 자는 서로 배척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서로 형제라고 말한다. 약하다고 강한 자를 비판해도 안 되고, 강하다고 약한 자를 업신여겨도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45:23,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11,‘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주님과 더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만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다르지만 주님 앞에서 평등함을 강조함으로서 위계질서가 아니라 사랑과 배려로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마지막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각자 자신에 대해 정산하게 될 것이다. 약한 자를 업신여겼거나 강한 자를 비판했으면 그것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비판하면 안 된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여 하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론
1.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인정하라.
2.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각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온전히 서 있는지를 돌아보라. 연약한 성도를 배려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주님과 그 나라를 위해 살라.
14:7-9,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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