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겔47:13-23 신실과 포용의 하나님 God of faithfulness and tolerance

관리자 0 4 12:26

겔47:13-23 신실과 포용의 하나님 God of faithfulness and tolerance

 

본문은 회복될 새 땅(성지)의 분배 규정에 대한 말씀이다. 당시 포로민들에게는 땅도, 기업도, 소망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47장에서 놀라운 비전을 보여주셨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환상(1-12)을 봅니다. 이 생수가 큰 강을 이룬다. 사해로 흘러내려 죽음의 땅이 되살아난다. 죽음의 바다가 되살아난다. 주위 에 나무들이 우거지고, 바다에 물고기가 가득하고, 어부들이 몰려든다. 이 놀라운 회복과 소망에 이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거류하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기업으로 주어질지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본문은 기업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과 타국인에게도 주어지는 하나님의 포용성을 말씀한다. 

 

1.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된 땅을 공평하게 분배하신다(13-21)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신다(13-14). 13-14절, “13.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는 이 경계선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몫이니라 14.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옛적에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 땅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재확인하신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창 12:7, 13:14-17, 아브라함 언약, 창15:9-21, 겔20:5-6, 36:28. 창15:18, 18.“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겔20:5-6, “5.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노라 6.그 날에 내가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새 땅을 공평하게 분배하라고 하신다.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14)는 명령은, 회복된 공동체에서는 지파 간의 차별 없이, 지위나 공로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동등하게 임함을 강조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우리 모두 하나님의 공평하신 복을 누리고 살아간다. 그런데 요셉에게는 두 몫이라고 하신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신의 아들로 삼은(창48: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말씀에 따라, 요셉 지파에게는 두 몫이 주어진다. 이는 레위 지파가 기업 대신 성전 봉사를 맡았기에 열두 지파의 수를 유지하고, 동시에 요셉의 공로를 인정하는 조치이다. 

 

새 땅의 경계 확정(15-20): 하나님은 새 땅의 경계를 확정하신다. 북쪽, 동쪽, 남쪽, 서쪽의 경계선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이는 추상적인 약속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확실히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임을 보여준다. 이 땅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자 통치의 실제적인 무대이다. 북쪽은 하맛 어귀, 동쪽은 요단강과 사해, 남쪽은 애굽 시내, 서쪽은 지중해이다(지도 참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경계를 정해 주신다. 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시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기업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복으로 주신 것이다. 오늘 그 복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업, 곧 하나님 나라와 영생, 구원을 주셨다. 

이 ‘땅’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삶을 살아간다. 이 새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복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2. 포용의 하나님은 타국인에게도 기업을 주신다(22-23). 이는 하나님 나라의 포용성을 말씀한다. 

22-23절, “22.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타국인 곧 너희 가운데에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 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23.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렇다. 경계를 넘어선 포용을 말씀한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 땅을 나눌 때 이스라엘 가운데 머물러 사는 타국인(이방인)에게도 이스라엘 족속과 같이 기업을 주라고 명령하신다. 차별 없는 은혜이다.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 같이 여기고"(22). 

거주 지파에서 기업을 부여한다. 타국인이 거주하는 그 지파에서 땅을 나누어 주도록 한다(23). 이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도 보여준다. 이 말씀은 회복될 새 이스라엘이 배타적인 민족 국가가 아님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구원과 기업은 혈통과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질 새 언약 시대의 비전을 예표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한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렇다. 이는 혈통, 육정, 사람 뜻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다. 룻을 보라. 그는 이방 모압 여인이었다. 하지만 유대인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겼다. 룻1:16, “룻이 이르되 ...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리하여 이방여인 룻은 예수님의 선조로 족보에 오르는 존귀한 자가 되었다. 마1:5,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타국인에게도 이스라엘 본토인과 같이 기업을 주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 세상을 품는 넓은 사랑이시다. 나는 내가 받은 기업(구원, 은사, 자원)을 누구와 함께 나누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3:28에서 선포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과거 '외국인'이었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토 백성이 되었고, 영원한 기업을 약속 받았습니다. 본문의 타국인에게 준 기업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업을 보여줍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3. 하나님의 은혜는 공평하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똑같이 보는 공평과는 다르다. 마20장의 품꾼 비유가 잘 말씀한다. 어떤 포도원에서 하루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일꾼을 채용했다. 각각 오전 9시, 11시, 오후 3시, 마지막 오후 5시에 왔다. 오후 6시가 되어 주인은 제일 늦게 온 5시에 와서 한 시간 일한 일꾼에게 한 데나리온을 지불했다. 그러자 일찍 온 사람들은 은근히 훨씬 더 받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은 모든 이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지불했다. 그러자 먼저 온 일꾼들이 주인을 원망했다. “왜 한 시간만 일한 일꾼에게 하루 종일 수고한 우리와 같이 주십니까?” 주인은 그들에게 말한다. “친구여,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나중 온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나의 뜻이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이다. 하나님은 모든 이가 예수 믿어 구원을 받길 원하신다. 모든 지파에게, 심지어 요셉에게 두 몫을 주면서까지 공평함을 강조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각자 받은 은혜와 사명이 다르지만, 구원의 기업은 동등하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신실하신 약속: 에스겔에게 새 땅의 경계를 자세히 알려주신 하나님처럼,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게 하는 구체적인 약속이나 경험은 무엇입니까?

2) 공평함과 기업: 하나님께서 모든 지파에게 공평하게 기업을 분배하신 원리를 생각하며, 내가 교회나 공동체 안에서 받은 영적, 물질적 기업을 혹시 이기적인 마음이나 배타적인 태도로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경계의 포용: 하나님은 타국인도, 본토인처럼 대하라고 명령하신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포용하신다. 유대인과 이방인 타국인도 포용하신다. 오늘 내가 섬기는 교회나 공동체 안에서 '타국인'과 같이 느끼는 소외된 지체(새신자, 약자, 사회적 약자 등)는 누구이며, 그들에게 '기업을 나누어 줄'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기도 :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도 저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이루심을 찬양합니다. 또한 약속대로 땅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가운데 머물러 사는 타국인(이방인)에게도 이스라엘 족속과 같이 기업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구속의 역사를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이 되었음을 기억하며,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기업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