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마4:13–17, 사 9:1–2; 보라! 전하라, 큰 빛을!

관리자 0 7 01.26 23:33

마4:13–17, 사 9:1–2; 보라! 전하라, 큰 빛을! 


 인생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육체의 질병, 경제적인 결핍, 깨어진 관계, 혹은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 우리 영혼을 짓누를 때가 있죠. 성경은 이 세상을 “어둠”에 비유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어둠을 향해 빛을 켜시는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오늘 본문은 그런 '흑암' 속에 갇힌 자들에게 들려오는 하늘의 소망에 관한 이야기다. 700전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그 빛이 오늘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을 듣자. 

 

1. 보라! 큰 빛을!(사9:1–2)/이사야가 이 예언을 선포할 2730 년전, 이스라엘은 영적·정치적·도덕적 어둠 속에 있었다. 북쪽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갈릴리는 이방의 길이요, 변방이자 멸시받는 지역이었다. 주목받지 못한 곳, 소망이 사라진 곳이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들에게 이 비치도다.”(사9:2) 하나님의 빛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먼저 비친다. 마태는 16절에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라며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선언한다. 사람이 포기한 곳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 큰 빛은 사상도, 제도도 아닙니다. 한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예수 그리스도, 예언의 성취(마4:13–16)/ 마태는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을 설명한다. 예수님은 유대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 거기서 헤롯왕이 2살 이하 아기를 다 죽이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애굽으로 피난을 가셨다. 그리고 헤롯 왕이 죽고 나서, 유대땅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갈릴리의 스불론 땅, 나사렛으로 가셨다. 나사렛은 예수님이 30여년 사신 고향이다. 이제 그곳을 떠나 납달리 땅, 제2의 고향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공적인 생애 많은 부분을 이곳과 주변에서 사역하셨다. 곧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땅으로 가셨다. 당시 이곳은 어둠의 땅, 절망의 땅이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변두리에서 시작되어 중심으로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마태는 분명히 말한다(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렇다. 큰 빛 예수님이 오심으로 예언이 성취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빛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어둠은 물러간다. 죽음의 그늘 아래 있던 자들에게 생명의 빛이 비쳤다. 예수님은 빛 그 자체이시다(요1:5,8:12,9:5). 큰 빛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어둠이 빛으로 바뀌게 된다. 소망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된다. 

3. 큰 빛을 본 자는 변화된다(마4:17)/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17)이다. 빛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일어나는 반응은 회개이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것,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자기 삶의 주인을 마귀에게서 하나님께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큰 빛을 보았는데도 그대로 살 수는 없다. 빛은 반드시 삶을 드러내고, 변화시킨다.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어둠을 이긴다". <예화: 2,000시간의 어둠을 이긴 '별빛'> 최근 전 세계를 감동시킨 실화가 하나 있다. 2023년 콜롬비아 아마존 정글 한복판에서 경비행기가 추락한 사건이었다. 성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지만, 그곳에는 13살 맏언니 레슬리를 포함한 9세, 4세, 1세인 어린이 4남매는 살아남았다. 그들이 구조(6.9)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40여일, 즉 1,000시간이 넘는 암흑 같은 시간이었다. 뱀, 맹수와 독충, 굶주림, 그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정글의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구조된 후 밝혀진 사실은 놀라웠다. 13살 소녀 레슬리는 절망에 빠져 우는 동생들에게 매일 밤 이렇게 속삭였다. "얘들아, 저기 나무 사이로 비치는 별빛을 봐. 저 빛이 우리 엄마의 눈동자처럼 우리를 지켜주고 있어. 우리는 반드시 빛을 따라 나갈거야." 아이들은 진흙 바닥에 나뭇가지로 '우리는 여기 살아있다(We are alive)'라는 글자를 써놓고 그 글자가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보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결국 그 작은 '희망의 빛'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40일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이 아이들이 버틴 정글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참 닮아있다. 사방은 적으로 둘러싸여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캄캄한 어둠뿐인 것 같다. 하지만 기억하라. 흑암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13살 소녀가 본 작은 별빛이 네 어린 생명을 구했듯이, 우리에게는 우주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생명의 빛이 있다(마4:16,요일1:5). 세상이 여러분의 환경을 '사망의 그늘'이라고 말할 때, 주님은 여러분의 인생 위에 '하늘의 별빛'을 비추고 계신다. 아이들이 진흙 위에 쓴 글자처럼, 우리도 오늘 믿음의 고백을 새기자. "나는 주님의 큰 빛 안에 살아 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믿음의 큰 빛이 여러분을 정글 같은 세상에서 반드시 건져내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큰 빛을 믿음으로 성령으로 새롭게 되었다. 사도 요한은 우레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다혈질에 욕심이 많은 어부였어요. 하지만 사랑의 큰 빛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 요일1:1-2, 그는 예수님을 듣고 눈으로 보고,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졌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의 생명을 보았고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사도로 바뀌었다. 요한은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를 당했다. 그곳에서도 사랑의 예수님을 전했다. 90세가 넘어서 석방되어 다시 에베소교회로 돌아왔을 때, 성도들에게 빛이신 주님의 사랑을 전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라. 서로 사랑하시오.” 

4. 큰 빛을 본 자의 사명: 전하라/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큰 빛을 보았고, 그 빛 아래 살아가며 이제는 그 빛을 전해야 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미 큰 빛을 본 사람들이다. 죄와 절망의 어둠 속에서 의미 없는 삶의 방황 속에서 죽음의 그늘 아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에게 비쳤다. 그러나 빛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비추는 것이다. 등불은 감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들기 위함이다. 오늘도 세상은 어둡다. 여전히 사망의 그늘 아래 있는 사람들, 갈릴리와 같은 인생의 변두리에 서 있는 사람들,  빛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신다. 하나님은 “네가 얼마나 많은 빛을 아느냐”고 묻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네가 본 큰 빛을 전하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가에서 어부 네 사람, 두 형제들을 부르셨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형제이다. 이들은 큰 빛 예수님을 뵙고서 배나 그물, 아버지마저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이제까지는 물고기를 잡는 자들이었으나, 이제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씀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충만히 받아 예루살렘과 초대교회에서 큰 빛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로 살았다.  

*911 테러의 영웅, '맹인 안내견' 로젤 이야기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78층에서 근무하던 마이클 힝슨은 시각장애인이었다.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고, 사무실은 순식간에 유독가스와 칠흑 같은 어둠,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모두가 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마이클의 발 곁에는 그의 안내견인 리트리버 '로젤'이 있었다. 평소에 조용한 동반자였던 로젤은, 모두가 절망의 어둠에 갇힌 그 순간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그 개는 어둠이 익숙한 안내자였다.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지옥 같은 어둠이었지만, 평생 주인의 눈이 되어 어둠 속을 걷는 법을 훈련받은 로젤에게는 그 어둠이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로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주인의 손을 이끌어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빛으로 나아가는 행진을 했다. 놀라운 점은 마이클뿐만 아니라, 그 층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로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로젤의 침착한 발걸음과 숨소리를 이정표 삼아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갔다. 78층에서 1층까지, 1,463개의 계단을 내려가는 1시간 동안 로젤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건물 붕괴 직전 모든 사람을 안전한 빛의 세상으로 인도했다. "여러분, 당시 78층에 있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백 마디 훈계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알고 있는 존재의 '발걸음'이었다.

오늘 본문의 갈릴리 백성들이 처한 상황이 바로 이와 같았다. 죄와 사망의 어둠에 갇혀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던 그들에게, 큰 빛 예수님이라는 '참된 안내자'가 찾아오셨다. 세상 사람들은 어둠이 오면 두려워 숨거나 절망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르다. 우리에겐 흑암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라는 길을 정확히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911 테러의 현장처럼 캄캄한가? 내 힘으로 길을 찾으려 애쓰지 말라. 이미 내 곁에 와 계신 큰 참빛 예수님의 손을 잡으라. 그분은 어둠을 뚫고 통과하는 법을 아시는 분이며, 결국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생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적용 질문] 내 삶에서 여전히 '흑암'과 '사망의 그늘'처럼 느껴져 주님의 큰 빛이 절실한 영역은 어디인가? 나는 세상의 성공이라는 인공 조명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의 참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오늘 내가 그 큰 빛을 전해줘야 할 '내 주변의 갈릴리(소외된 이웃)'는 누구인가?

결론: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리라: 어둠의 땅에 절망의 세상에, 예수님은 큰 빛으로 오셨다. 이사야가 예언하였고, 요한은 큰 빛을 보았다. 마태는 이를 증언했다. 우리도 그 빛을 보았다. 이제 그 빛을 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큰 빛을 보고, 큰 빛을 따라 살며, 큰 빛을 전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를 통해 어둠 가운데 있는 누군가가 다시 한 번 이 고백을 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도다.”  사9장 7절은 약속한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우리가 빛을 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빛이 되신다. 우리는 그저 그 빛을 받아 반사하기만 하면 된다. 성도 여러분,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제 일어나라.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고통받는 이웃 곁에서 예수의 큰 빛을 발하라. 여러분이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정직한 행동 하나가 사망의 그늘에 앉은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되는 '큰 빛'이 될 것이다. 

 

기도문: 어둠을 뚫고 빛으로 승리하게 하소서/“이 시간 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결단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죄악과 절망이라는 짙은 흑암 속에 갇혀 있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큰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세상의 화려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소외되고 멸시받던 갈릴리를 먼저 찾으신 주님의 그 세밀한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주여, 우리를 빛의 자녀로 세워 주시옵소서! 어둠을 뚫고 오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이 시간 결단합니다! 우리 삶에 여전히 드리워진 질병의 어둠, 경제적 결핍의 그늘, 관계의 깨어짐이라는 흑암 앞에서 더 이상 두려워 떨지 않게 하옵소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제는 어둠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기로 결단합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사오니, '전능하신 하나님', '기묘자 모사' 되시는 큰 빛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간절히 간구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성전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빛의 전달자'가 되게 하소서. 내가 머무는 가정이 나로 인해 밝아지게 하시고, 내가 일하는 직장이 나로 인해 소망을 보게 하시며, 절망 중에 죽어가는 영혼들이 나를 통해 비치는 예수의 빛을 보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약속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주님의 열심이 우리 인생을 영화롭게 하실 것을 신뢰합니다. 오늘 이 결단이 일회성 다짐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이번 한 주간 우리삶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등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큰빛이요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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