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막 2:18-28 묵상 자료/ 심 규섭 목사

관리자 0 282 01.17 16:28
막 2:18-28 묵상 자료/ 심 규섭 목사

1. 2:18-22, 금식 논쟁
  구약은 속죄일에 금식을 했다(출20:10, 레16:1-34,23:26-32, 등). 음식을 금하여 몸과 영혼에 고통을 가하며 회개하여 죄를 씻고 속죄제를 드린다. 1세기를 전후에서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 한 주에 두 번씩 자발적 금식을 했다(눅18:12). 개인과 세상의 죄에 대해 슬퍼하는 마음으로 경건과 헌신을 표현했다(마6:16,눅18:12).
  본문의 배경은 바리새인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금식기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와 그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금식하던 이들이 예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는지 힐난조로 묻는다(18절 하반). 바리새인들은 자발적인 금식을 고정된 전통 의식으로, 목적을 자체의 준수라는 수단으로 바꾸어 버렸다.
  예수는 지상에 있을 때 금식과 금욕을 하지 않으셨다. ‘탐식가, 술꾼’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잔치와 축제를 즐기셨다(마11:19,눅7:34). 하나님 나라는 메시야의 잔치를 수반하는 환희와 행복의 사건으로 비유된다. 본문 19-20절은 예수가 즐거운 혼인과 잔치의 신랑으로 언급된다. 예수는 ‘회개’를 외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막1:15). 참회와 가슴 치는 애통함, 새 삶으로의 결단을 수반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삶 자체는 억제나 속박이 아니라 (마11:28 참조), 활력이 넘치는 새 창조(고후5:17, 갈6:15)다. 신랑과 같이 있는 혼인 잔치의 손님 들(제자들과 초대된 모든 사람들, 나아가 예수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금식할 수 없고(19), 기뻐해야 한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을 새 시대를 열어가는 주인으로 선포하신다(21-22). 그 시대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낡은 것과 새 것, 낡은 부대와 새 부대에 대한 비유이다. 낡은 옷의 헤어진 곳을 깊기 위해 생베조각을 대면 그것이 낡은 옷 자체를 끌어당겨 완전히 망가뜨린다(21). 생베조각인 예수의 새 질서는 낡은 옷, 옛 질서에 붙어 공존할 수 없다는 메시지이다.
  또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부대가 터져서 못쓰게 된다. 예수로 인해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는 새 포도주이기에 낡은 부대인 옛 유대교를 담지 못한다. 여기서 낡은 옷이나 낡은 부대는 바로 유대 전통이나 규례를 의미한다. 이제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주님은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자신이 왔다고 강조하신다. ‘새롭다’는 ‘카이노스’(21,22, 써보지 않은,새로 만든, 질적으로/본성상 새로운)와 ‘네오스’(22, 시대적/기간적으로 새로운;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로 나온다. 즉 예수의 가르침은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토라나 규례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 새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신앙을 갖기 위해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새(네오스) 포도주는 새(카이노스, 새로 만든) 부대에’는 하나의 슬로건처럼 형용사와 명사가 반복된다. 유대교라는 옛 제도를 무너뜨리고 새 부대인 교회, 기독교의 새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
*카이노스(종말론적 의미 강함):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이름(계), 새 피조물, 새 것(고후5:17), 새 사람 새 성품(엡2:15,4:24), 새 계명(요13), 새 언약(눅,고전,히)
*네오스: 갓생긴, 어린. 현재 구원의 새 현실. 새 백성, 새 포도주(막2:22), 새 누룩(고전5:6), 새 사람(골 3:9-10) 등. 
*적용 질문/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담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는 무엇인가? 율법주의, 옛 생활, 잘못된 습관, 미움, 시기심, 교만, 분노 등. 

2. 안식일 논쟁(2:23-28) *3:1-6까지 이어진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에 시작하여 토요일 저녁에 끝난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요, 창조 후 안식하신 날이다(창2:3, 출20:11).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셔서 특별히 구별해 놓으신(카다쉬, 구별하여 분리시키다, 출20:11,신5:12) 날이다. 안식일은 사람들이 노동의 과로에서 벗어나 쉴 수 있도록 사람을 위하여 제정되어 거룩하게 구별된 날이다(신5:14, 출31:14, 막2:27).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이다.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걸었다(23). 하지만 예수는 별반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식일과 별 상관이 없는 다윗의 이야기(삼상 21:1-6)로 그 행위를 정당화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차기 왕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기는 절박한 상황, 생존의 갈림길에서 율법을 위반하는 소지가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추종자들을 먹였고, 이에 대해 정죄를 당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이 다윗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존재이심을 확인하신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신다(28).

 *여기서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대제사장은 아히멜렉이지 그 아들 아비아달이 아니다?(26).
1) 하지만 예수 당시 다윗이 왕이 된 후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던(삼상23:9,30:7) 아비아달 (아버지보다 더 유명)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 마가는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방식으로 대제사장 용어를 사용했다. 즉 행정권 가진 대제사장 가문의 사람에게 다 적용되었다. 아비아달도 그 가문의 한 명이었으므로 적용 가능하다. 3) 예수님 말씀은 아비아달이 이미 대제사장이었다고 암시하지 않는다. (에피 아비아달 아르키레오스)에서 ‘에피’+속격은 ‘때에, 시대에’ 의미로 아비아달 ‘생시에’로 번역이 가능하다). 주후 1세기 이해대로 받아들이면 모순이 아니다. 

  안식일 규정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다. 사람에게 쉼을 주기 위해 안식일이 존재한다. 동시에 안식일 규정의 해석의 주권은 ‘인자’에게 있다. 인자가 그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안식일법에 묶어두었으나, 예수님은 그 정신에 따라 지키도록, 즉 생명을 위한 일은 할 수 있다는 유권적인 해석을 하심으로 ‘인자’(메시야)로서 안식일법을 평가하는 주인이라고 하신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사랑을 실천하는 데 제한을 받지 않는다(뒤에 이어지는 안식일에 손마른 환자를 고쳐주신다).   
*안식일 정신/준수 목적 : 1) 창조 활동으로부터 안식(출20:11, 창 2:3) 2) 노예 상태에서 구원(출 애굽 정신, 신5:15). 이 둘(창조와 구원)은 하나님의 두 면이고 서로 조화를 이룬다. 3)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 기억하며 참 안식을 얻음.   
*적용 질문/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기억하면서 주일을 보내고 있는가? 즉 생명을 살리는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참된 쉼을 누리고 있는가?(마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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