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마가복음 2장 1-17절 묵상 자료.

관리자 0 320 01.10 09:52
마가복음 2장 1-17절 묵상 자료.

1-12: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중풍병자’(파라뤼콘,3): ‘완전히 무력해진 사람, 무기력한 인생’을 의미한다. 네 사람이 메고 올 정도로 심각하다. 예수께 나오면 치료받는다. *기발하다! 포기 않는 끈기, 능력 신뢰를 보라
 ‘지붕’(스테게,4)는 보호하다, 참다 뜻의 ‘스테고’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누운 상’(크라바토스)은 중풍병자가 지붕처럼 의지해 왔던 것인데, 친구들에 의해 그 지붕이 벗겨진 것이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5) : ‘피스티스’, 믿음은 기적과 능력에 대한 강한 신뢰(trust)를 의미 하고, ‘에이돈’(호라오, 5,14), ‘보다’는 꿰뚫어 그 속을 본다는 의미이다. 즉 예수님이 꿰뚫어 보시는 것은 그들의 헌신적이고 확고한 믿음이다. *피스티스:1)수용과 지적 동의(롬10:9,10) 2)충성과 신실(롬1:5) 3) 기적과 능력에 대한 강한 신뢰(막9:23,24)

 ‘작은 자야 네 죄들이 사함받았다’(5) : 예수님 멋쟁이! 따봉! 가르치시던 주님은 불편과 방해와 고통을 받으셨다. 집수리에 상당한 돈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이나 책망 않고 그들의 믿음 보시고 병자를 치료해주셨다. 이 주님께 감사하자. 여기서 죄들은 병자의 것 또는 공동체의 죄들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예수 앞에 나와 선 것이 회개라 본다. 이 회개를 믿음으로 보고 죄사함이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성모독이로다’(7) : 죄사함은 성전 제사를 통해 제사장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선포하는 것인데, 제사장도 아니며 어떤 제사도 드리지 않고서 죄사함을 선언하니까 신성모독으로 본 것이다.
‘중심에 아시고’(8) : ‘중심에’(프뉴마티)는 ‘영으로’, ‘아시고’(에피기노스코)는 ‘깊이 헤아려 분명히 이해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영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깊이 헤아려 아시고 분명하게 이해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야 하지 않겠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사죄 선언)와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치유 명령) 중 어느 것이 쉽겠느냐?(9): 말 자체로는 가시적인 결과가 필요없는 전자가 더 쉽다. 예수님의 의도(깊은 차원, 사죄는 오직 하나님 영역)는 후자가 더 쉽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어렵게 여기는 일, 병자를 치료하심으로 자신에게 사죄권이 있음을 드러내셨다 (10).
 12절, 중풍병자가 치료받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다 ‘놀랐다’(엑시스타스싸이) :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크게 놀란 것’을 뜻한다. 예수님께 사죄권이 있음을 보고 이렇게 놀랐다. 당시 죄사함 받으면 육체의 질병도 동시에 치료된다고 여겼다. *사죄와 치유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시103:3, 41:4,렘3:22,호14:4). 둘 다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 나라 임재의 특성이다. 

13-17 : 세리 레위를 부르시다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14) : 예수님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에서 사람들의 혐오를 받는 세관의 자리에 레위가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앉아있는 것을 중심까지 보셨다.
 ‘나를 따르라’(14)는 초대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는 현재 명령이다. 즉 따르기를 시작해서 그분의 삶의 길을 계속 걸어가라는 뜻이다. 자기 희생의 길, 고난의 길, 사람들에게서 분리되는 길, 거룩한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따르라는 의미이다. *제자도/막8:34. 
 ‘죄인들이 ... 따름이라’(15) : 죄인들, 소외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따랐 음(에콜루쎄오의 미완료 중간태)을 의미한다.

 ‘세리와 죄인들과의 식사’(15) : 당시 세리는 거의 창녀, 간음하는 자나 강도처럼 여겨졌다(눅 18:11). 죄인의 상징이요 대표격이었다. 민족의 반역자로서, 법적인 권리도 박탈당하고 천대 받았다. 이방인 노예처럼 증인으로 진술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리를 불쾌하게 여겼다. 그러나 주님은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고, 회개하는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의 시선이 아니라, 사랑의 시선으로 세리들도 동일하게 보신다. *나도 주님의 사랑의 시선으로 이웃을 대하고 있는가?   

 ‘나는 의인을 부르러 ... 아니요’(17) : 예수님은 율법의 모든 의무를 다 지켜서 스스로 경건하 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를 불러 구원하러 오셨다. 의사는 예수님, 건강한 자는 의인, 병든 자는 죄인을 의미한다. 병든 자가 의사를 필요 로 하듯, 죄인은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 주님은 의사요 치료자이시다. 병든 자를 치료해야 하고, 치료를 위해 그들과 접촉하셔야 했다. 서기관들은 율법과 유대 전통의 형식을 중시했으나, 주님은 율법의 정신과 사람을 중시하셨다. 주님은 세리에 대한 편견을 거부하셨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떤 직업이냐 보다 부르심에 응답하느냐가 중요하다. 또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롬13:8-10, 사랑은 율법의 완성)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자비와 긍휼로 사람을 대하셨다.

예수는 지금도 세리와 죄인을 부르려고 그들 가운데 계신다. 오해도 받고 눈총도 받는다. 오늘 예수의 몸인 교회도 예수를 따라 사람을 품어야 한다. 교회는 병자들을 위한 의사의 집이다. 치유공동체이다. 나는 예수님처럼 죄인들을 품고 그들을 치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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