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17,21-27,39-44, 절대 절망에서 절대 소망으로③, 주일설교및성경연구
요11:17,21-27,39-44, 절대 절망에서 절대 소망으로 ③
11:17,21-27,39-45,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21.마르다가 예수께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39.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5.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더라.
<설교>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무덤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끝으로 보이는 곳에서도 예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무덤이 마지막 문장이 아닙니다.
Ⅰ. 예수님은 우리의 "끝났다"보다 크신 분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조금만 일찍 오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죽기 전에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분입니다. 우리는 "끝났습니다", "이제 회복할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은 끝났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표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늦어 보여도 하나님께는 늦지 않습니다.
Ⅱ. 예수님은 무덤 앞에서도 "믿음"을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아직 나사로는 무덤에 있었고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은 문제가 해결된 후에 믿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Ⅲ. 예수님은 죽은 자를 향해 "나오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무덤의 돌을 옮기게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무덤에서도 주님의 말씀은 생명을 일으켰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오래된 상처와 절망, 두려움과 죄, 포기와 무기력의 무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래되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나오라."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장차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나사로는 다시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죽음조차 마지막이 아닙니다.
결단/내가 "이제는 끝났다"고 포기했던 것을 다시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내 마음의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믿음으로 옮기겠습니다.
절망과 두려움에서 일어나 생명의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믿나이다."
말씀/"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5)
기도/부활이요 생명이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눈에는 끝으로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음을 믿습니다. "이제는 늦었습니다"라고 낙심했던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고, 무덤 앞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 안의 절망과 두려움과 상처와 죄의 돌을 옮기게 하시고, "나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믿음으로 응답하게 하옵소서. 무덤이 마지막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연구/요11:17,21-27,39-44, 절대 절망에서 절대 소망으로 ③
1. 본문 관찰
나사로는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17).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21). 그러나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23). 마르다는 마지막 날의 부활을 믿었지만,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자신을 계시하십니다(25).
예수님은 무덤의 돌을 옮기게 하시고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39-40). 그리고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자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옵니다(43-44).
2. 본문 해석
Ⅰ. 예수님은 우리의 ‘끝났다’보다 크신 분입니다(17,21,39).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나흘 된 죽음도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끝난 시간이 하나님께도 끝난 시간은 아닙니다.
Ⅱ.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요구하십니다(25-26,40,42).예수님은 먼저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26). 마르다는 아직 기적을 보지 못했지만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27). 믿음은 문제가 해결된 후에 갖는 것이 아니라, 아직 무덤이 열리지 않았을 때에도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Ⅲ. 예수님은 죽은 자를 향해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마르다는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현실을 말했습니다(39).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43).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실 더 큰 구원의 사건을 보여 주는 표적입니다. 나사로는 다시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소망을 주십니다.
3. 삶에 적용
우리에게도 무덤처럼 느껴지는 영역이 있습니다. 오래된 상처,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포기한 자녀, 식어버린 믿음, 반복되는 죄와 절망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내가 할 일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믿고 무덤의 돌을 옮기는 것입니다.
4. 오늘의 결단
오늘 내가 옮겨야 할 돌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끝났다”는 절망의 돌, “나는 안 된다”는 포기의 돌, 오래된 상처와 미움의 돌, 기도를 포기하게 만든 돌을 하나 옮겨 놓읍시다.
그리고 마르다처럼 고백합시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무덤이 마지막 문장이 아닙니다. 실패도, 눈물도, 죽음도 마지막이 아닙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지막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5. 마침 기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우리가 “나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도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무덤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의 절망과 상처와 죄와 두려움의 돌을 옮기게 하시고, “나오라” 하시는 주님의 생명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들고 오늘도 소망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